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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17 14:40
야화(野話)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 다섯 번째 밤, 홍량(??) 무녀.
 글쓴이 : iugxaoh5116
조회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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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냉랭한 바람이 산천을 휘감는 가운데, 이제 막 열기를 북돋는 동이 트기 시작하는 무렵이다. 태양이 내리는 양기가 채 지면에 와 닿기도 전이건만 홍량이는 물통 두 개를 들고 내와 집을 오가며 물동이에 물을 채우고 있었다. 새 날이 시작됨을 알리는 태양보다도 더 부지런했던 홍량이는 그 고된 노동에 태양만큼 몸이 뜨거워져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물통을 나르는 홍량이는 아직 물동이를 반 밖에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발걸음이 더욱 분주하다. 어머니가 일어나기 전에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놓아야 치도곤을 면할 수 있는 탓이다.



다른 아낙들은 물동이를 이고 가서 물을 가득 채워놓은 물동이를 이고 오는 것으로 끝이지만, 홍량이는 아직 물동이를 들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에 작은 물통에 물을 채워 분주히 내와 집을 오가며 집에 놓인 물동이를 채우는 것이다. 그 작은 물통마저도 홍량이에게는 천근같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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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물 다 길어오지 못한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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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독스러운 한마디가 집에 들어서는 홍량이를 향해 찔러져온다.



전 날에 쪄 놓은 고구마를 놓고 둘러앉아 먹는 부부.



홍량이의 부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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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조금만 더 하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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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물을 길어 오질 않으니까 허기가 져서 고구마나 먹고 있잖니. 어서 부엌에나 들어가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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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지으려면 필요하니 물을 길어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밥 짓는 것도 결국 홍량이의 몫이었다. 아직 잠이 덜 깨어 비몽사몽한 까닭에 딱히 회초리를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쩌다 기분이 상하면 언제든지 혼날 수 있기에, 홍량이는 잽싸게 물통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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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씻어두었던 쌀에 물을 더 붓고 불을 땐다. 여름이기에 부뚜막은 사용하지 않고, 따로 부엌 옆 바깥에 마련해 둔 화덕을 쓴다. 방바닥이 더워지지 않는다 뿐이지, 불가에 머무르는 이에게는 고되기가 매한가지다. 정오의 뜨거운 햇볕을 쪼인 것처럼 맺힌 땀들은 물통을 이고 나를 때부터 맺혔고 지금은 비가 오듯 주룩주룩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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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불에 올리고 장작을 더 넣은 뒤, 된장과 남은 무 조각을 넣고 국을 끓인다.



연신 화덕의 불을 피우느라 재가 날리고 묻어 땀범벅인 얼굴은 가무잡잡해진다.



후에 잠시 시간이 남아 대청마루의 분위기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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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고구마를 조금 먹다가 다시 잠든 것을 확인하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는 홍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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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어른 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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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목소리가 집 밖에서 들려온다.



이런 이른 아침부터 손님이 다 있는가 싶어 홍량이는 급히 손의 재만 털고 일어나 문간으로 향한다. 그 곳에는 금박에 푸른 도포가 인상적인 사내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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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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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량이는 최대한 예를 갖추어 손님을 맞이했다.



지체 높은 사람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비단 옷에 금박을 두르고, 빛깔 고와 보이는 부채를 들고 있으니 땀 흘려 일해야 먹고 사는 부류의 사람은 아닌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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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홍량님 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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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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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홍량이의 이름을 부르는 사내.



당황한 홍량이는 의아함보다도 낯선 상황에서 오는 불안감이 더 컸고, 쭈뼛거리며 사내를 마주했다. 그러함에도 사내는 더욱 깍듯한 모습으로 홍량이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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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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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집안일은 손도 대지 않던 부부이건만, 웬일인지 스스로 마을에 나가 먹을거리를 사오고 이어서 다담상(茶啖床)을 내왔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달달한 다식과 약과가 먹음직스럽게 놓여 졌고, 고급스러운 향의 국화차가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건만, 국화차의 잔은 모두 네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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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손님이 한 잔씩 받고도 한 잔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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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들거라, 차가 식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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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어머니의 자상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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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량이는 적응이 되지 않는 까닭에 쉽사리 잔을 받을 수 없었다.



혹여 자기가 눈치도 없이 잔을 들거나 상을 같이 받았다가 치도곤이라도 치르는 것은 아닌지 싶어 으레 겁부터 난다. 자신의 몫으로 나온 다과와 차가 놓인 작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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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받는 자신만의 상은커녕, 홍량이 본인이 부모의 밥상을 차리고 나면 홀로 부엌에 웅크리고 남은 잔반이나 누룽지 집어 먹던 것이 일상인지라 어찌 할 바를 모르며 당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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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님은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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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아무렴요. 좋은 것은 가장 먼저 먹이고 가장 먼저 입히며 마음을 다해 키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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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어린 부모의 행세를 하며 손님에게 극진한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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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어리둥절하는 홍량이를 바라본다.



그제야 넋을 놓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신의 앞에 놓인 약과를 집어 먹는 홍량이.



향이 좋은 국화차는 아무래도 좋았다. 평소 먹지 못했던 달달한 과자가 홍량이의 마음을 홀딱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말랑말랑 차지며 달달한 다식도 좋았고, 끈덕지고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약과도 좋았다. 단단하고 고소한 강정이나 폭신폭신하고 향긋한 유과도 너무나 좋았다. 군침이 줄줄 흐르는 터라 목메지도 않았다. 그저 그간에 먹을 수 없었던 맛난 것에 대한 행복감과 쌓이고 쌓인 허기가 함께 솟구쳐 허겁지겁 과자들을 집어먹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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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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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떨어지는 어머니의 한소리에 덜컥 겁이나 손과 입을 멈추고 눈만 동그랗게 뜨는 홍량이. 기겁하여 몸이 얼어버린 모습이 되고나서, 입안에서 그토록 달콤함을 주던 과자도 그 맛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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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먹으렴, 체 하겠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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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변하는 어머니.



평소와는 다른 그 태도는 조금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손님의 앞에서 게걸스럽게 과자를 집어먹었기 때문일까. 손님은 홍량이만을 주목했고, 그 손님의 눈치에 부부는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홍량이는 귀한 손님인데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구나 싶어, 연신 움직이던 입조차 내버려두고 입에 한가득 과자만 물고 가만히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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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님은 잘 지내지 못하셨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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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미소를 띤 손님은 그 표정 그대로 웃으며 말한다.



한창 웃는 낯이나 그 모습에 도리어 얼어버린 것은 홍량이의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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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간 매달 전해드린 돈은 무녀님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달라는 조건이었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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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똑같은 낯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국화차는 아직도 그 열기가 식지 않아 뜨겁게 김을 피워내고 있었으나, 그들이 느끼는 것은 오로지 살벌한 냉기 뿐 이었다. 시퍼런 칼날 같은 찬바람이 그 냉기로 살을 찢는 한겨울의 모습처럼 달달 떨리는 그들의 손은 찻물이 겨우겨우 넘치지 않을 정도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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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 일반 양민이 열 명은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매 달 드렸건만, 매번 사치나 노름으로 모두 써버리신 모양입니다. 제가 그런 소식도 듣지 못하였을 줄 아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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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리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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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조한 오늘까지 별 소리 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간 것은 그래도 주어진 책무를 다 할 것이라 믿고 신뢰한 까닭이었습니다만,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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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손에 들린 잔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며 변명을 해보려 하는 부부.



그러나 부부가 채 입을 열기도 전, 사내의 입에서 노기어린 명령이 먼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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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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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아무 소리도 없이 적막하기만 하던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며, 방문을 열어젖히고 여러 장정들이 우루루 들어섰다. 그들은 순식간에 부부를 붙들어 포박하고, 납죽 엎드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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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들을 끌고 가라! 내 추후 죄를 묻고 목을 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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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나리! 그게 아니옵니다! 억울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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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량아! 말 좀 해 보거라! 우리 다 죽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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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불고 기겁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부부는 장정들에게 끌려 나간 뒤, 곧바로 조용해졌다.



무섭도록 사무치는 적막감이 손님과 홍량이 사이에서 맴돈다. 장정들과 부모가 모두 나가 단 둘만 남은 방. 홍량이의 입 속에는 어머니의 한소리에 씹는 것을 멈추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물려져 있는 과자가 한가득 이었다. 손님은 어느새 노기를 지우고, 다시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홍량이를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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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치 마시고 편히 드십시오. 모두 무녀님을 위한 것들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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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물려진 과자를 다 씹어 삼키자마자 사내는 홍량이에게 목이 메지 않도록 차를 권했다.



오물오물 과자를 먹은 홍량이는 사내의 말에 차를 꼴깍꼴깍 넘긴다. 그리하자 사내는 남긴 것들은 손을 대지 않아도 좋으니 같이 갈 데가 있다며 홍량이를 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포박되어 끌려갔건만, 홍량이는 그보다 집에 두고 가는 남은 과자가 아깝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스스로도 그런 생각은 하면 안 된다고, 부모의 안부를 더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였으나 어찌나 그 달콤한 과자가 좋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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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이윽고 크고 휘황찬란한 가마에 홍량이를 태웠다.



홍량이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좌불안석했으나 가마꾼들은 능숙하게 홍량이를 태우고 성큼성큼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가마의 옆에는 홍량이를 데리고 나온 사내가 말을 타고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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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귀하신 무녀님을 겁박(劫迫)할 이는 이제 없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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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홍량이를 달래는 사내의 모습에도 홍량이는 안심할 수 없었다.



대체 무녀라는 것은 무슨 소리인지 싶었으나 겁에 질린 까닭에 묻지도 못하고 그저 가마에 몸을 실은 채 길을 따라나서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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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항상 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으나, 홍량이는 부모의 명령에 마을로 갈 수 없었다.



거기다 홍량이의 집은 마을 근처의 산 아래에 있었고, 꽤나 가까운 거리이건만 아무도 발걸음을 하지 않는 까닭에 마을 구경은커녕 부모 외에 다른 이를 보는 일도 요원한 일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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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방문하는 마을의 모습에 넋이 나갈 법도 한 일이나, 홍량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모습들은 따로 있었다.



그 처음 보는 사람들이 홍량이가 탄 가마가 지나갈 적마다 바닥에 엎드려 경건히 절을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특별한 날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을 모실 때나, 혹은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자신이 다른 이들의 절을 받다니. 더욱 홍량이의 혼란은 가중되었고, 결국 유일하게 아는 사람인 사내의 눈치를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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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홍량이는 어마어마하게 큰 기와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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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은 문간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넓이나 깊이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큰 건물이 몇 채 있었고,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 채가 홍량이가 살던 집의 열 배가 훨씬 넘었으니 그 기세가 오죽하랴. 홍량이는 그 중, 한 가운데의 가장 큰 건물에 들어갔다.



그 건물 앞에 당도하자 가마는 바닥에 내려졌고, 약간의 어지럼증과 욕지기가 나던 와중이라 너무나 달갑게 땅에 발을 디뎠다. 그 후 곧바로 칼을 찬 무사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선 홍량이를 처음 맞이한 것은 거대한 사람들의 목상이었다.



흉측하게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들이 창이나 칼을 들고 서있는 거대한 나무 조각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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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단지 사천왕의 조각일 따름입니다, 수호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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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이라는 사천왕의 조각상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맛있는 냄새가 한가득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냄새에 자극을 받았는지 허기를 알리는 꼬르륵 소리가 울린다. 두 명의 여인이 홍량이가 그들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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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는 커다란 상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위에는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기한 음식들이 한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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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오신 다과 따위에 신경 쓰실 필요 없으십니다. 허기가 지실 터이니 마음껏 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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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자마자 홍량이는 쭈뼛거리면서도 유일하게 깔려있는 방석을 찾아가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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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문을 열어주었던 여인 둘이 다가와 홍량이의 앞에 고기의 살점 따위를 잘라 놓거나 멀어서 닿지 않는 곳의 음식을 조금씩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극진한 대접에 홍량이는 자리에서 일어날 걱정도 없이 모든 음식들을 맛 볼 수 있었고, 긴장감에 젖어 있던 그 표정이 비로소 누그러지며 행복감에 젖기 시작한 것이었다.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때마다 감동을 거듭했고, 그 만복감이 기분 좋게 마음을 간질였으나 음식들을 더욱 맛보고 싶다는 마음에 그 뱃속을 더 힘껏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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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멧돼지가 통째로 구워져 올려져있고, 본 적도 없는 홍량이 만한 새가 구워져 있었다. 오색찬란한 전과 탕들이 향긋한 냄새를 자아내고, 맛깔나게 보이는 새콤달콤한 과일들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어른의 팔뚝만한 생선들이 탕 속에 들어가 고소한 냄새를 내고, 거칠거칠한 껍질을 가진 까먹는 녹색 속살의 열매는 그 새콤한 맛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여린 불 위에 올려져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는 그 많은 고기들은 여인들의 말로 소고기라고 하였다.



밥풀들이 한껏 가라앉아 있는 뽀얀 음료는 너무나도 달콤하고 시원했으며, 한 겨울에나 볼 수 있었던 얼음이 가득 띄워져 있었다.



바로 앞에 놓인 흰 쌀밥도 윤기와 기름기가 넘치며 너무나 맛있었지만, 밥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모든 음식들이 기쁨 그 자체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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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들어갈 데가 없을 만큼 한가득 음식을 먹은 홍량이는 마지막으로 소화에 좋다는 배의 정과를 먹는 것으로 식사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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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입맛에 맞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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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같이 너무 맛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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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감을 한껏 드러내는 홍량이의 대답에 사내는 미소로 답을 한다.



그러다 사내는 홍량이의 앞에 부복(俯伏)하고 예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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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이 많으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인은 작게나마 이 마을의 대소사를 관리하고 있는 이청이라 하옵니다. 무녀님에 대해서 그들에게 들으신 바는 전혀 없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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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량이는 그저 도리질을 칠 뿐 이었다.



무언가 듣기는커녕 이청이 이야기하는 무녀라는 것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무한 까닭이다. 그에 이청은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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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마을은 항상 무녀님들을 배출해 왔습니다. 매 번 12년이 지나 뱀의 해가 올 때마다 무녀님이 나고 지시는데 이번 무녀님이 바로 홍량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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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옛날이야기를 듣는 모양으로 이청의 말에 주목할 뿐인 홍량.



아무것도 모르는 이야기이니 그저 듣고 그렇구나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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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량이라는 이름은 항상 무녀님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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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뜸을 들이며 침묵하는 이청. 그 침묵이 길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 난처한 그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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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마을 해안가에는 홍량거부라고 하는 수신(水神)이 있습니다. 그 수신의 이름을 따서 홍량이라 무녀님들을 칭하는데, 12년마다 한 번씩 무녀님들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저희 마을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사옵니다. 실은 부모라고 알고 계시는 그들 부부가 언질을 드렸어야 하는 일인데, 이들이 무녀님 몫의 재물만을 탈취하고 자신들의 임무에 대해서는 몹시도 소홀했던 모양이라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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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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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진상을 알았더라면 제가 올바르게 처리했을 것이지만, 무녀님들은 항상 준비된 날이 되기까지 최대한 타인의 손을 타지 않는 것이 규율이기에 어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규율 탓에 마을에서 떨어져 그들의 손에만 무녀님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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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 이후로는 뚜렷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없었다.



무언가 더 이야기를 하고 마을의 명맥에 대해 이야기 하는 듯 보였지만, 홍량이의 머릿속은 제물이라는 말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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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마음의 준비를 하실 시간을 드리면 좋으련만, 바로 오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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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는 죽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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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기겁을 하며 소리치는 홍량이.



제물이라 하면 목숨을 바친다는 소리가 아닌가. 갑자기 이렇게 데려와놓고 바로 죽으라니 이게 무슨 말인지. 마치 천둥벼락이 머리라도 때린 듯, 극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이 홍량이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다급한 홍량이의 물음에 다시 한 번 한숨을 몰아쉬는 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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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도망하거나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라지만 죄 없는 무녀님을 겁박(劫縛)하고 싶지는 않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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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형형색색의 꽃들이 들어가 기분 좋은 향기를 물씬 피워내는 따스한 욕탕.



홍량이는 그 안에 들어가 여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따스한 목욕이었지만 홍량이의 마음에는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깊은 수심(愁心)이 들어선 홍량이의 모습을 보면서도 여인들은 그저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정성껏 홍량이의 몸을 씻겨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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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비단 옷을 입고, 예쁘게 분칠도 한다.



그 와중에도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는 청량한 차도 내오고, 끊임없이 고운 음악도 연주하고 있었지만 홍량이에게는 그저 그것들이 사약이요 곡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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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를 마친 홍량이는 그 으리으리한 기와집에서 나왔다.



너무나 순식간에 마쳐진 준비의식이라고 생각했건만, 홍량이가 바라본 하늘은 이미 해가 자취를 감춰 어두컴컴해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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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들이 지저귀는 야심한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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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횃불들이 홍량이 가는 길을 줄지어 밝히고 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온 모양으로, 그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홍량이가 지나갈 무렵마다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고, 그들의 의식은 몹시도 경건해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러 가는 길인데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홍량이는 지금까지 먹었던 것을 물어내라면 평생이 걸려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모두 물어낼 것이었고, 짐승처럼 살더라도 당장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청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의지가 홍량이의 마음을 온통 찌르는 통에 겁에 질려 단 한마디도 꺼내질 못했다.



반항이라도 한다면 꽁꽁 묶어서라도 데려갈 기세였고, 온통 기가 죽어버린 홍량이는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하고 푸줏간에 끌려가는 짐승마냥 죽은 눈을 하고서 겨우겨우 발걸음을 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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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일이 계속되다 아침마다 홍량이가 물을 길어오며 걸었던 만큼이 지났을 무렵, 횃불의 행렬이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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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의 배웅은 이것으로 끝이옵니다. 이 제단 위에 그저 앉아 계시면 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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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량이가 도착한 곳은, 가파른 해안 절벽이 있는 곳에 놓인 돌 제단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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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을 온통 엎어놓은 것 같은 시커먼 하늘에 묻혀 그 끝을 알 도리가 없는 절벽의 높이.



단지 깎아지른 절벽의 모습으로 보건데 그 어떤 것도 그 위에 오르기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절벽에는 난생 처음 보는 거대한 물결이 일어 연거푸 그 몸을 부딪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벼락이라도 떨어지는 듯 천지를 가득 메우는 굉음들이 홍량이의 귀와 정신을 온통 혼란스럽게 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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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홍량이 하나만 두고 바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그들의 눈동자에는 뚜렷한 공포심이 자리하고 있어 그 동공을 세차게 흔들고 있다. 홍량이는 이들이 돌아간 뒤에 바로 도망을 할까 생각하였으나, 그것 또한 요원한 일인 것이었다. 해안 절벽은 가파르기에 도저히 오를 수 없었고, 반대편은 파도가 세차게 절벽을 때리며 소용돌이 치고 있는 물지옥이었다. 도망하려면 왔던 길을 돌아가는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지키고 서있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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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온 수행인들은 홍량이가 올라선 제단 위에 갖은 음식들을 차려두고, 급히 홍량이에게 절을 한 뒤 부리나케 도망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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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위해 스스로를 공양하시는 그 경건한 모습, 정말 감읍할 따름입니다. 저는 평생 잊지 않을 것 이옵니다, 무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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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 또한 그 마지막 말을 남기고 황급히 자리를 떠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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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게 몰아치는 파도소리에 모든 소리가 먹혀 들어간다.



불빛 하나 없는 시커먼 해안 절벽은 횃불을 든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에 휩싸였다. 눈을 감으나 뜨나 안보이기는 매 한가지여서, 홍량이는 채 한 걸음을 걷기는커녕 제대로 일어설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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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센 파도 소리가, 마치 자신을 집어 삼키려는 아귀(餓鬼) 따위의 울음소리로 들린다. 불빛이 있었을 때에도 시커멓게만 보였던 바다인데, 마치 눈을 감은 듯 온 천지가 그림자뿐인 지금은 오죽할 것인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은 공포감에 숨도 쉬기 힘들어졌고, 몸은 바들바들 떨려오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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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둠속에서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나타날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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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말로는 홍량거부라는 수신이 와서 잡아먹는다 하지 않았나.



저항도 할 수 없고 그저 죽을 때만을 기다린다 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러나 울음소리라도 낸다 치면 그 소리를 듣고 무언가 잡아먹으려 아가리를 들이댈까 겁이나 끅끅대며 울음소리만큼은 집어삼켜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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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 쏴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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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벼락이 세차게 쏟아지는 폭풍 속에서나 들리던 우레 같은 소리들이다.



점점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고, 숨통은 더욱 막혀왔다.



그러다 홍량이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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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정신이 흐릿한 환상을 펼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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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고 나면 기억하지 못 할, 그런 모습들을 본다.



물속에 머리를 담근 듯 물거품 소리가 사방을 메우고 귀는 먹먹하다.



눈꺼풀 없는 거대한 눈이 홍량이를 집어 삼킬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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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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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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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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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맑게 울리는 청아한 방울 소리.



홍량이는 문득 그 소리에 정신을 되찾고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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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몹시도 고요했고, 단지 멀리서부터 울려오는 그 방울 소리만이 홍량이의 귀를 간지를 뿐이었다.



부스스 깨어난 홍량이는 눈앞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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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선명한 불빛 하나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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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여전히 제단 위에 누워있었고, 정신을 잃은 와중 몸부림을 쳤던 모양인지 제사 음식들은 바닥에 죄다 떨어지고 엎어져 못쓰게 되어버린 뒤였다. 그나마 그런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불빛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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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그 모습이 가까워지니 머지않아 그 모양을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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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을 들고 있는 붉은 비단옷의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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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묶거나 땋지 않고 그대로 두었으나, 곱게 내려오는 그 모습이 마치 검은 폭포와 같이 보였다. 그 소녀가 들고 있는 초롱의 끝에 방울이 달려 맑은 메아리를 내고 있었다.



흡사 괴물이나 요물 따위의 무시무시한 모습이 아닌, 말 그대로 예쁜 소녀가 은은히 밝은 초롱을 들고 다가오자 홍량이의 낯에는 화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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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네가 홍량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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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몹시도 궁금하다는 듯 귀엽게 말을 건네 왔다.



그저 초롱불에 지나지 않건만, 어느 때 보다도 따스한 불빛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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